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영국 북부지역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킨 발틱 현대미술센터  

영국의 남부와 북부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불균형을 겪어 왔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가 정치적 무게뿐 아니라 재력과 계층적 우위를 바탕으로 문화 및 예술 분야의 발전을 경험한 데 비해, 영국의 북부는 중공업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이 퇴조하는 과정에서 침체기를 겪어왔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건 문제, 주택 가격, 실업률 등이 사회 문제로 제기될 때마다, 영국의 지역 불균형이 언급되곤 한다.

발틱 현대미술센터(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는, 2002년 7월 영국 북동 지역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시에 맞닿은 게이츠헤드(Gateshead)에 개관했다. 1950년대부터 약 30여년 간 밀가루 제분소로 사용되다가 방치된 건물을 개조하면서, 이 지역에 부족한 예술적 공간을 확보하겠단 목표를 세웠다. 타인(Tyne) 강변에 산재한 여러 건물 중에서도 그 웅장한 크기와 장소성 때문에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였던 이 건물이 약 4천 6백만 파운드(한화 약 8백억원)의 예산투자로 3천 평방 미터의 전시 공간을 갖춘 대규모 아트 센터로 변신한 것이다. 발틱 현대미술센터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로, 소장품 없이 오직 전시 프로그램들로 운영되는 갤러리 중에선 영국에서 제일 크다. 이 덕분에 게이츠헤드 또한 문화·관광 명소로서 이미지를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약 10년에 걸쳐서 개관된 발틱은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카스텐 홀러(Carsten Holler), 줄리언 오피(Julian Opie), 제인&루이즈 윌슨(Jane & Louise Wilson) 등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외국 미술가와 영국 중견·신진 작가들을 나란히 선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발틱 현대미술센터는 이 프로그램으로 개관 첫 주에 3만 5천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면서, 발틱의 창립이 지역의 문화적 요구에 적절한 대응이었음을 반증해주었다.

터너프라이즈 전시 유치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발틱 현대미술센터

발틱의 개관을 책임지고 수 년 간의 운영을 맡았던 스웨덴 출신 수네 노드그렌(Sune Nordgren) 관장이 2003년 퇴임한 후, 5년간 세 명의 새로운 관장을 영입하는 불안정한 시기를 맞았다. 2008년 현재의 고드프리 워스데일(Godfrey Worsdale) 관장이 부임하면서 안정을 되찾은 발틱은, 2011년 테이트 미술관의 핵심 전시 중 하나인 <터너프라이즈(Turner Prize)>를 주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동시대 미술의 대명사이기도 한 ‘터너프라이즈’가 본래의 집인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을 떠나 보다 넓은 층의 관객을 향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 전시가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에서 개최된 2007년이었다. 영국 북·남 분리 이슈를 안고 있는 북서부 도시 리버풀에 ‘북부를 위한 테이트(Tate for the North)’라는 모토로 1988년 세워진 테이트 리버풀은, 리버풀의 ‘유럽 문화 수도 2008’ 해를 기념하는 일종의 개막 행사로 2007년 겨울 <터너프라이즈> 전시를 주최했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상어(원제: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침대(원제: My Bed) 등 영국 현대미술의 여러 ‘스캔들’의 본산이기도 한 터너프라이즈는 기존의 미술 애호가들 뿐 아니라 현대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술 행사 중 하나다. 테이트 미술관 외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개최한 <터너프라이즈> 전시는, 지역 주민들의 폭발적인 관심 덕에 15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었다.  

소장품 없이 기획 전시 중심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발틱은 독일식 쿤스트할레(Kunsthalle)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개관 이래 뉴 커미션 혹은 영국에서 최초 소개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진행하며, 발틱 갤러리는 그 어떤 갤러리보다도 급격히 변하는 동시대 미술의 경향과 담론을 빠르게 반영하고자 하였다. 지난 10여년 간 소개된 작가의 면모를 보자면, 뉴캐슬어폰타인 출신의 영국 중견 그룹 제인 & 루이즈 윌슨부터 비슷한 세대의 영국 작가들인 조지 쇼(George Shaw),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 마크 월링거(Mark Wallinger), 전위 예술가로서 플럭서스(fluxus) 운동을 이끌었던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일본 출신 미술가 온 카와라(On Kawara), 레바논 출신의 중견 미술가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까지 예술적 경향 면에서나 출신 지역, 활동 영역 면에서 다양하다. 한국 현대미술 또한 발틱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영역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김수자(Kim Sooja) 작가와 김소라(Kim Sora) 작가의 개인전도 이 곳에서 열린 바 있다.

지방 현대미술 갤러리의 모델로 자리잡은 발틱 현대미술센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10년을 뒤로 하고 영국 북부 지방을 대표하는 미술기관으로 성장한 발틱 현대미술센터는, 2000년대 후반 들어 경쟁적으로 세워진 지방 공공 미술기관들의 모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노팅엄 컨템퍼러리(Nottingham Contemporary), 터너 컨템퍼러리(Turner Contemporary), 헵워스 웨이크필드(Hepworth Wakefield) 등 최근 수 년 간 문을 연 지방 도시들의 현대미술 갤러리는, 발틱과 함께 런던 이외 지역 주민들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장려하고 있다. 미술 및 문화 전반에 대한 공적 지원이 최근 경제 불황으로 인해 심각하게 줄고 있는 추세이나, 이 미술 기관들의 설립으로 인해 확보된 전시 공간이나 지역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은 영국 미술계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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