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courtesy of The Serpentine Gallery / Photograph © 2007 John Offenbach
Image courtesy of The Serpentine Gallery / Photograph ©

2007 John Offenbach

주한영국문화원은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하이드 파크 안에 위치한 현대미술 대표 갤러리, 서펜타인 갤러리

세계적인 대도시 중 하나인 런던을 다른 도시들과 차별화하는 것 중 하나는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공원들이다. 하이드 파크(Hyde Park), 그린 파크(Green Park), 리젠트 파크(Regent Park)  등 런던 시내 중심가에 비중 있게 자리한 녹색 공원들은, 부산한 도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공원 바깥의 복잡한 거리와는 대조되는 평온한 자연을 누릴 수 있게 한다. 하이드 파크 켄징턴 가든(Kensington Garden)에 자리한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는 이런 런던 공원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갤러리의 명칭 또한 좁고 길어서 뱀 모양을 닮았다는 뜻으로 붙여진 근처 서펜타인 호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공원과의 조화를 위한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1970년 본래 공원 내의 티 하우스(Tea House)였던 고전주의 풍 건물을 미술 갤러리로 전환해 문을 연 이래, 서펜타인 갤러리는 현대 및 동시대 미술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공공 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시작과 성장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처음 서펜타인 갤러리를 개관했을 때만 해도, 런던은 사실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북쪽으로는 노팅 힐(Notting Hill), 남쪽으로는 나이츠브리지(Knightsbridge)와 켄징턴(Kensington) 같은 부유층 주거지역에 인접한 켄징턴 가든 또한, 순수 미술을 다루는 상업 갤러리들이 자리한 웨스트엔드 지역과는 상당한 거리를 지닌 곳으로 여겨졌다. 장식 미술과 역사적인 명작들을 대표하는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 과학과 자연사를 중심으로 한 켄징턴의 다른 박물관들과 비교하여, 서펜타인 갤러리가 주목한 현대 미술은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그다지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었다. 따라서 갤러리는 본래 여름에만 문을 여는 한정적인 제도로 운영되었고, 공원의 여러 기념물 및 편의 시설과 함께 산책 나온 주민들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1990년대는 영국이 긴 경제적, 정치적 터널을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전위적인 문화와 현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번져나가고 일부 미술가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 인사들처럼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고, 세계 미술 무대에서 영국 현대 미술이 그 위상을 높여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1991년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로 부임한 줄리아 파이튼-존스(Julia Peyton-Jones)헤이워드 갤러리 큐레이터라는 비교적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임기 초반부터 갤러리의 부실한 건물을 보수하고 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는 미술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 나갔다. 당시 영국 미술계에서는 생소했던 후원금 마련을 위한 디너 파티, 미술계 인사가 아닌 개인 기부가들로부터의 후원 등 파이튼-존스 관장의 적극적인 자금 마련 노력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아이콘 중 하나였던 다이애나 황태자비와의 친분을 통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일반인들은 물론 미술계 인사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얻지 못했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전시 개막식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행보를 쫓는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순식간에 불러 모았고, 귀족을 비롯한 많은 상류층 인사들과 정치 및 재계의 주요 인사들이 갤러리를 후원하는 데 중요한 길을 열어 주었다. 이에 따라 1996년 갤러리의 보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시작되었고, 이듬해 황태자비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의 발전은 지속될 수 있었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획기적인 건축 프로젝트, 서펜타인 파빌리언

1990년대가 서펜타인 갤러리의 재정적 성장 및 미술계 주류로의 입성으로 기억될 만한 시기라면, 2000년대는 획기적인 건축 프로젝트 ‘서펜타인 파빌리언(Serpentine Pavilion)’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2000년 여름, 연례 후원금 마련 행사인 디너 파티를 준비중이던 갤러리는 당시 세계 건축계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던 자하 하디드(Zaha Hadid)에게 행사용 야외 천막 건축을 맡겼다. 일회용 행사의 임시 건축물로 지어진 하디드의 천막이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과 명성을 얻으면서, 서펜타인 갤러리는 이 건물을 여름 내내 대중에 공개했고,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새로 지어진 파빌리언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19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 100년이 넘는 건축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런던이지만, 사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의 숫자는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다른 세계 도시들에 비교할 때 매우 한정된 것이 사실이다. 일 년 단위가 아닌 한 달 단위로 스카이라인을 바꿔 나가는 아시아나 중동 지역의 도시들과는 달리, 런던에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새로운 건물을 만날 기회는 따라서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이런 런던의 독특한 한계에 착안하여, 일 년에 한 명씩 세계적으로 활동하지만, 영국에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한 적이 없는 건축가들에게 켄징턴 가든 내 갤러리 옆 공간에 파빌리언을 짓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토요 이토(Toyo Ito),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Rem Koolhaas), 미국의 프랭크 게리(Frank Ghery),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 등 지난 10여 년 간 서펜타인 파빌리언을 지은 건축가들의 목록은 스타급의 세계적 건축가들을 망라한다. 

제2의 서펜타인 갤러리,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

2013년 서펜타인 갤러리는 켄징턴 가든 내의 다른 건물에 두 번째 갤러리를 개관한다.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Serpentine Sackler Gallery)라는 명칭을 가지게 될 이 공간은, 본래 매거진(The Magazin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200년 역사의 무기 창고였던 곳이다. 갤러리는 다시 한 번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손잡고 서펜타인 호수 건너편에 자리 잡은 이 창고를 갤러리로 전환해, 900평방 미터에 달하는 새로운 전시 및 편의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신축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미술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패션, 영화, 문학, 음악, 퍼포먼스 등 다른 문화 장르 및 테크놀러지까지도 포함하는 복합 문화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2006년 저명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를 공동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더욱 세계적으로 현대미술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유지해 온 갤러리답게, 서펜타인 갤러리는 야심 찬 미래로의 발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많은 공공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정부 및 공적 기금의 지원이 감소한 탓에 다소 소극적인 행보를 선택하는 데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런 서펜타인 갤러리의 적극적인 확장 계획은 더욱 값진 도전 정신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