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Shot, Sensation: Image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Installation Shot, Sensation: YBA from the Saatchi Collection ©

Installation Shot, Sensation: Image courtesy of the Saatchi Gallery, London

한국인 최초로 테이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숙경 박사의 영국문화계 소식입니다. 영국의 미술관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에 앞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미술의 성장과정과 배경을 두 편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영국현대미술의 성장 배경

오늘날 영국의 현대미술은 영국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 미적 수준과 대중적 명성을 자랑한다. 런던은 물론이거니와 맨체스터, 뉴캐슬, 버밍험, 리버풀, 에든버러, 글라스고 등 영국의 크고 작은 여러 도시들에는 역사적인 미술품들뿐만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미술관과 아트센터들이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고, 소장품 전시 및 기획전시를 통해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계속 되고 있다. 난해하거나 소수 부유층과 엘리트를 위한 예술이라는 인상 대신 시사적인 문제와 동시대적 이슈를 접근하기 쉽게 다루는 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거리감도 줄어들고 있으며, 현대미술의 교육적 효과 및 정서적 역할 또한 적극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미술이 이처럼 영국 문화계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전반적인 사회 분야의 주요 축 중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사실 1990년대 이래의 일이다. 전통과 역사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나라답게, 최근20여년 전까지 영국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이집트, 중국, 페르시아 등의 고대 문화부터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사의 전개에 주목하는 소장품과 전시 프로그램에 대한 변화에 소극적이었다. 미술 분야에 있어서도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20세기 초의 추상 미술이 대다수 전시의 주된 주제를 이루었고, 2차 대전 이후의 미술을 다루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20세기 후반부터 대중음악이나 패션, 디자인 같은 분야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술 분야에서의 주류는 세기의 말까지도 동시대보다는 과거에 경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YBA를 필두로 한 젊은 영국 작가들의 활발한 전시

현대미술이 영국에서 급속도의 성장을 이룬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작가들 스스로에 의해 조직된 DIY (Do-It-Yourself) 성격의 전시가 1980년대 말부터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컨대 데미언 허스트 (Damien Hirst)가 런던의 골드스미스 미술 대학 졸업반 동기들과 함께 기획한 <프리즈 (Freeze)> 전은, 산업 재조정 단계에서 항만계의 침체로 비어있던 런던 동부 도크랜드 지역의 창고 공간을 이용한 전시로서, 전시 당시에는 빠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이후에 전개된 참여 작가들의 예술적, 상업적 성공의 발단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지금은 전설적인 이벤트로 기억된다. 마가렛 대처 수상 집권기에 미술에 대한 공공 지원금이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미술 기관들의 활동도 제한되었고, 신진 미술가들이 미술계의 주류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펼치는 데 대한 제도적인 지원도 드물었다. 지극히 한정된 숫자의 현대미술 관련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가 자신들을 찾아 나설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미술계에 자신들의 존재 및 작품 세계를 알리고자 한 적극적인 태도는, 필요에 대한 대응이었을 뿐 아니라 제도권의 기존 질서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 미술가의 등장을 알리는 현상이었다.  

국제적인 현대미술을 대표했던 당시 미국 미술의 경향과 흐름에 민감했던 젊은 영국 작가들은, 형식적인 면에서나 주제 면에서 미국 전후 미술의 대표적 동향이었던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 등과 유사한 맥락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테이트 갤러리 (Tate Gallery), 화이트큐브 갤러리 (Whitecube Gallery) 등 공공 미술 기관에서 드물게나마 열린 미국 작가들의 전시회뿐 아니라 사치 갤러리 (Saatchi Gallery), 안소니 도페이 갤러리 (Anthony d’Offay Gallery) 등이 소개한 미국 미술의 단면들은, 이들 젊은 영국 작가들의 예술적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 ‘YBA (Young British Artists)’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끈 이 작가들은, 대서양 너머 뉴욕에서 전개되어온 동시대 미술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영국 사회 특유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난 감수성을 작품에 반영하였다. 

‘YBA’를 현대미술의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시킨 동인이 된 광고계의 거장 찰스 사치 (Charles Saatchi)는 영국 현대미술계의 대표적 컬렉터로 이미 1980년대부터 미술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왔다. 1985년 런던 서북부의 페인트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공간에 처음 문을 연 사치 갤러리는, 찰스 사치가 당시 그의 부인과 함께 자신들의 현대미술 소장품을 대중에 공개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솔 르윗 (Sol Lewitt), 브루스 나우먼 (Bruce Nauman),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 등 미국 미니멀리즘과 개념 미술 작가들, 제프 쿤스 (Jeff Koons), 로버트 고버 (Robert Gober), 피터 헤일리 (Peter Halley) 등 미국 팝 아트 작가들을 영국 대중에게 처음 소개하는 전시들을 선보이면서, 사치 갤러리는 차세대 영국 현대미술가들에게 중요한 미적 자양을 제공한 셈이다. 이후 찰스 사치가 소장하기 시작한 일군의 영국 미술가들이 이들 미국 작가들의 예술적 언어와 미감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작품들을 보여준 것 또한,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영국정부의 미술교육 확대와 아티스트들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증가  

최근까지만 해도 영국의 대학 교육비가 정부에 의해 지원됨으로써 중산층 이하의 청소년들이 미술 대학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영국 미술의 독특한 지형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상류층 자녀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미술 교육이 더욱 폭넓은 사회 계층으로 확산되면서, 미술 작품의 성격과 주제 또한 획기적인 전환을 맞았다. 축구 경기와 지하철 노선도를 이용한 사이먼 패터슨 (Simon Patterson), 선정적 일간지들의 지면을 그대로 도입한 사라 루카스 (Sarah Lucas), 클럽 문화와 레이브 문화에 바탕을 둔 짐 램비 (Jim Lambie)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미술의 내재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층위를 포괄하는 새로운 미술 경향을 대표하였다. 특히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과 글라스고 미술 대학 등은 지난 20여년 간 다수의 전업 작가들을 배출하면서, 토론과 비평에 바탕을 둔 영국 고유의 미술 교육이 지닌 장점을 입증하는 예가 되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특히 크게 기여한 것으로는 미디어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나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데미언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같은 작가들이 미술에 무관심한 다수의 대중에게 낯익은 유명 인사로 인식되면서, 현대 미술 자체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어서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던 대중들에게 있어서, 미술가들도 일반인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은, 미술에 대한 접근도 어렵지 않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한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토니 블레어 수상 집권기에 늘어나기 시작한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과 공공 미술 기관의 성장에 따라 질적, 양적 차원에서 더욱 급속하게 그 폭을 넓혀 나갔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 지속할 것을 약속한다.

 

필자: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숙경

이숙경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던 이숙경은 1996년 런던 시티대학 예술비평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에섹스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내 다양한 예술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말 테이트리버풀로 옮겨 큐레이터이자 테이트 미술관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 구입위원회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테이트 모던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 센터에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