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영국 노르위치(Norwich)에서 열린 제1회국제 문학 쇼케이스(International Literature Network Showcase)는 영국문화원과 Writers’ Centre Norwich가 기획한 행사로 25명의 영국 출신 작가들과 전 세계에서 50여명의 문학, 출판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했습니다.
3일간 진행된 이번 쇼케이스는 낭독회, 디스커션, 참가국 대표들의 프레젠테이션 등으로 구성되어 세계 유수한 전문가들간의 파트너십, 네트워킹을 도모하고 협업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와우책문화예술센터 이채관 대표의 후기 1, 2편을 통해,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의 도시, 노르위치의 국제 문학 쇼케이스를 소개합니다.
영국 노르위치로 가는 길
봄 기운이 채 오기 전 어느 날, 영국 노르위치(Norwich)에서 열리는 국제 문학 쇼케이스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영국문화원의 연락을 받고 잠시 주저했다.
내가 10여 년 동안 활동해온 일들이 과연 문학과 얼마나 연관이 있을까? 책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예술적 변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기획, 운영해온 지 10년째지만 문학 그 자체의 이슈들에 어떤 고민을 해왔는가? 자문해 볼 때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문학뿐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책 문화 활동가들을 만나고, 그들이 상상하는 새로운 책 문화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세계 50개국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수 없었다. 오래 전 한때 공부했던 익숙한 나라 영국으로 길을 나섰다.
내가 살고 있는 홍대 앞에서 출발해서 노르위치라는 영국의 한 도시에 도착하기까지 24시간이 넘게 걸렸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 장거리 비행을 하고 다시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지나 도착한 노르위치의 밤. 새벽 1시가 넘어 겨우 도착한 노르위치역의 밤은 몇몇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적하고 조용한 오래된 역사도시의 전형을 보여 주는 듯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낯선 땅에서의 새벽공기만이 여행을 온 듯한 마음을 느끼게 해줬을 뿐, 고난의 24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만날 사람들에 대한 설렘을 가슴에 묻고 노르위치의 낯선 첫날 밤을 보냈다.
문학의 도시, 노르위치
다음 날 해가 밝은 다음 다시 만난 노르위치는 아주 다양한 문화적 자원을 지닌 오래된 도시의 힘을 보여 주었다. 특히, 노르위치는 9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학의 도시로 알려져 왔다.
언어의 힘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의회 민주주의 사상을 알렸는지 그리고 노예제도를 없애는 데 어떻게 이바지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사상의 도시이며, 문학이 예술의 한 장르로 성장하는데 언어와 사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도시였을 뿐 아니라, 현재 영국 내에서 약 5%의 독립출판활동이 이루어지는 출판과 문학의 도시이다. 또한 1395년 영국 최초의 여류 작가가 탄생한 도시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지금까지도 독립적이고 새로운 다양한 문학적 실천들이 이루어지는 도시이다. 오래된 도시가 뿜어내는 사유의 다양성은 현재 영국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힘으로 느껴졌다. 조용하고 일상적인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실험적이고 다양한 사유의 에너지가 유네스코가 노르위치를 문학의 도시로 지정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문학 쇼케이스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워킹
개인적으로 이번 쇼케이스 프로그램은, 학교를 마친 후 접한 가장 힘든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세계에서 온 30명의 대표자가 그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5×30 프로그램(Introduction to your work: the 5×30 presentations)뿐 아니라, 4일 동안 매일 영국의 작가 8명이 그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알리고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마찬가지로 문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예술 형식의 실험 및 공동체 기반의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 사례들이 매일 매일 쏟아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까지 이 많은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나누기에는 언어적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좀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기에는 개인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노는 것이 공부이고 놀며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공부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나에게 진지하고 밀도 있는 토론중심의 프로그램은 나를 허덕이게 했다.
하지만 이번 쇼케이스는 문학뿐 아니라 책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 공동체 프로그램 그리고 예술적 실험들을 서로 나누는 네트워크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책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배우고, 그들이 문학과 책의 힘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열정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은 즐거움이었다.
자국의 작가를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문학 쇼케이스
한국에서도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책 문화 실천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책은 모든 것을 담아내는 문화적 다양성의 시발점이며 사유와 반성하는 삶의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류의 자산이다. 더욱 다양하게 인류의 자산을 생생하게 접할 방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책 문화 실천가들이 해야 할 활동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기회였다.
또 한 가지 부러운 점은, 국가가 직접 나서 자국의 작가들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번 쇼케이스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쇼케이스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세계의 책 문화 활동가들을 초청해서 영국 작가들을 알리고, 그들이 세계로 다시 초청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행사 동안 매일 접하는 영국 작가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들이 지닌 생각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축복이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이 세계 시민들과 함께 공유되고 알려지기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은 매우 부러웠다.
문학은 사유 체계이며 사상이고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며 사유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예술의 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 형식의 근원적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문학의 중요성이 점점 잊혀 가는 한국의 문화환경이 안타까웠다. 문학의 힘이 다시 강조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채관 대표의 국제 문학 쇼케이스 참가 후기 2편에서는 쇼케이스에서 논의된 디지털 시대에서 독서와 예술 기획자들의 역할, 그리고 독서 공동체 등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이채관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 ㈜시월 대표,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총기획 및 운영.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을 통해 ‘책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맥락에서의 책 읽기 기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