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화원과 Writers’ Center Norwich가 기획한 제1회 국제 문학 쇼케이스(International Literature Network Showcase)가 2015년 3월 18일에서 22일까지 영국 노르위치에서 개최되었습니다. 25명의 영국 출신 작가, 그리고 전 세계에서 50여명의 문학, 출판계의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번 쇼케이스에는 와우책문화예술센터 이채관 대표가 참여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다른 참가자들과의 네트워킹 기회를 가졌습니다.
1편에 이어 참가 후기 2편에서는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독서와 예술 기획자의 역할, 그리고 독서 공동체라는 주제에 대해 이 대표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작가 및 기획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디지털 환경이 가져온 문학의 변화
국제 문학 쇼케이스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특히 몇 가지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하나는 '디지털 문학(Digital Literature)'에 대한 논의였다.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작가’라는 정체성 변화와 함께 작가와 독자 그리고 예술기획자들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디지털 환경은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 즉 민주주의적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작가라는 신비주의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두가 작가인 동시에 아무도 작가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디지털 환경이 접근성과 참여로 대변되는 민주주의의 확장을 가져다 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우리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감시 체제에서 살아가는 비관적 주체일 뿐인가에 대한 논쟁이 오고 갔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 속에서 문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리고 문학 프로그램들이 이러한 미디어 환경과 더불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쉽지 않은 질문들이었지만, 디지털 환경의 변화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것이 가져온 가능성에 주목한 다양한 시도들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더 많은 시와 문학이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고 생산자이면서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문학 주체들을 보다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는, 그리고 다양한 책 읽기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제공될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주장들이 많았다. 디지털 환경이 어쩔 수 없는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주체들을 어떻게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짚어 보아야 한다. 더불어 디지털 환경 내에서, 문학이기에 가능한 고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느꼈다.
문학과 공동체
깊이 있게 논의된 ‘문학과 공동체 literary communities’는 필자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의 활동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 주제였다. 책 문화는 독자들의 다양성과 글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하여 성장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문학을 포함하는 문화예술은 ‘모두'를 위한 예술이기보다 폐쇄적 공동체 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자기만의 논리에 기초한 엘리트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문학이 사회적 산물이고 공동체의 자산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더욱 쉽게 접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을 접하기 힘든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기획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소비가 아닌 논의와 소통의 매개체로서 독서문화가 계층을 뛰어넘어 확장된다면, 문학을 포함하는 책은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소통의 매개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책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상호의지적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책은 인류의 모든 경험을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국제 문학 쇼케이스의 의의
국가가 나서 자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려는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다양한 이슈들을 공유하고 논쟁하며 함께 책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태도들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다. 한 나라의 문화적 자산을 다른 나라에 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국의 문화적 성취를 자랑하거나 뽐내는 것을 넘어, 인류의 문제를 함께 공감하며 해결하려는 의지적 표현으로 보였다. 이번 ILS 쇼케이스 경험은 좁게는 노르위치의 문학적 자산에 기반을 둔 노르위치 시의 다양한 활동들이, 크게는 영국이 자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려는 헌신적 노력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도서 정가제 등의 이슈가 맞물려 출판물의 판매량과 독서인구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문화상품인 책의 가격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가격을 넘어 이제는 가치의 유통이 이루어져야 할 시대이다. 책이 담고 있는 생각의 다양성과 숱한 간접적 경험 그리고 지식을 서로 나누고 논쟁하며 스스로를 반성하는 존재로서의 인류의 모습들을 기대해 본다. 또한, 책을 매개로 서로 의지하며 삶을 영위해가는 힘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만들어 져야 한다. 책의 사회적 기능을 확장해 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쇼케이스였다.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공동체의 문제와 가치들을 나누고, 책을 통해 소통하고 책을 통해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끝없는 모색이 펼쳐진 4일간의 경험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채관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 ㈜시월 대표,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총기획 및 운영.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을 통해 ‘책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맥락에서의 책 읽기 기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