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힙합 아티스트 아칼라, 김경주 시인 (좌측부터) ©

주한영국문화원 

랩이나 힙합이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영미권의 문학은 라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와 랩을 ‘블라인드 테스트’ 해보면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시와 ‘갱스터 래퍼’ 아이스-티(Ice-T)의 랩 가사를 창작자의 이름을 가리고 나란히 놓는다면, 무엇이 시이고 무엇이 랩인지 구별이 불가능합니다. 형식상으로 이 둘은 거의 같기 때문이지요. 휴즈의 시에는 아이스-티의 랩 가사처럼 완벽한 라임이 규칙적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를 비트에 맞춰 랩으로 부르면 사실상 완벽한 랩이 됩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14행 서정시)로도 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형식상으로 완벽한 랩의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칼라(Akala). 영국의 작가, 시인, 역사가, 그리고 저널리스트로 스스로를 ‘블랙 셰익스피어’로 지칭하는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10분 만에 즉흥적으로 27개의 셰익스피어 작품 타이틀을 랩으로 풀어내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TED 강연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비트에 맞춰 랩으로 퍼포먼스하기도 했습니다. 

아칼라는 또한 사회적 기업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아칼라는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통해 청소년들이 셰익스피어와 힙합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그들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잠재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며, 자기표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교육/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에 ‘힙합 셰익스피어’ 공연을 위해 방한한 아킬라를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김경주 시인이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1편에서는 아칼라의 음악 세계와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한국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김봉현: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사실 한국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힙합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편이고, 또 힙합과 문학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칼라: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셰익스피어 리브즈 페스티벌(Shakespeare Lives Festival)'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평소 셰익스피어와 관련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에 행사에 초청 받았습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추구하는 여러 가지를 맛보기 형식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어떤 단체인가?

김경주: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대해 궁금하네요.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나요?

아칼라: 저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저처럼 가난한 집의 학생이 반에서 1등을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은 특별반에 저를 보내기도 했지요. 아직까지도 영국 곳곳에는 빈부격차, 계층차로 인한 기초교육의 위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들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을 때 최상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칭찬을 하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줄 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10대들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요. 모든 사람에게는 배우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누구든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그들과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것이 저의 교육 철학입니다.

힙합 셰익스피어 공연 중인 아칼라  © 주한영국문화원

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인가?

김봉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랩으로 선보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칼라: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인간의 심장박동을 그대로 모방한 아이엠빅 펜타미터(Iambic Pentameter)의 운율구조로 되어 있으며 리듬이 매우 강합니다. 예를 들어 그의 후기 작품 '더 템페스트(The Tempest)'를 보면 각 줄과 문단의 모양이 바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리듬이 표현되고 있지요. 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약 100개의 노래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여 이런 음악성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김경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음악성의 연결고리에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영미 문학권의 수많은 작품 중에 왜 셰익스피어인지에 대해 궁금하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본인에게 왜 특별하게 다가왔는지도요.

아칼라: 현대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는 정치적인 아이콘입니다.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의 작품을 대중이 널리 향유했었지만 지금은 정치적인 이유로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어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저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작가입니다. 그가 사용한 언어, 그리고 그가 창조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는 정말 훌륭하지요. 그가 작가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김봉현: 메시지는 랩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는 연설이나 웅변과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랩은 ‘음악’이기 때문에요.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칼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음악으로써 사람들의 감정에 닿을 수 없다면 음악가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내면의 깊은 것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메시지 뿐 아니라 구성, 믹싱, 마스터링까지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대담자 소개

김봉현은 힙합 저널리스트로서 힙합을 중심으로 힙합과 연결고리를 지닌 여러 분야를 한국에 소개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시와 랩의 연결고리’를 모토로 김경주 시인, 엠씨 메타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 팀인 ‘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로,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시와 랩 사이의 연결고리를 국내에 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