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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시내 ©

주한영국문화원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마지막 주에 열리는 영국문화원 쇼케이스는 영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전 세계 200여명의 주요 극장 및 축제 관계자들이 일주일 동안 영국 공연예술계의 최신 공연들을 함께 관람하고, 네트워킹 행사를 통해 서로의 관심 분야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홀수 연도마다 개최됩니다. 

2015년 10회를 맞은 영국문화원의 에든버러 쇼케이스에 한국 대표 공연 예술 관계자로 초청받아 참관한 LG 아트센터의 김지인 매니저가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이모저모와 쇼케이스에서 감상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그리고 공연 예술계의 떠오르는 흐름, 서커스

공연예술종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 법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공연계 입문한 지 십수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영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에든버러 쇼케이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직접 가보진 않았어도 여름이 지나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페스티벌 소식 때문이었는지 늘 익숙하게 느껴온 곳이었지만, 막상 공항에 닿고 도심으로 들어가니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새삼스러운 감상이기는 하지만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청명한 날씨와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낮게 펼쳐지는 스카이뷰는 지친 업무에서 벗어날 만큼 시원했고, 극장이나 학교는 물론 카페나 바 등 도시의 많은 공간이 공연장으로 변한 덕에 온 도시를 가득 채운 축제 분위기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8월 에든버러 전역에서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타투 페스티벌, 북 페스티벌 등 다양한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이 기간에 영국문화원에서는 전 세계의 공연예술관계자들을 초청하여 에든버러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영국 공연예술단체들의 쇼케이스(동시에 프린지에 참가한 공연들이다)와 함께 영국의 연극/무용 공연의 경향을 살펴보는 세미나, 네트워크 프로그램, 영국의 주요 공연 단체들과 만날 수 있는 ‘트레이드 페어(Trade Fair)’ 등 알찬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주일간 에든버러 쇼케이스 프로그램 참관을 위해 머물면서 인상에 남았던 두 가지는 강세를 보였던 서커스 공연들과 한 마리의 ‘소(cow)’였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제법 다양한 형태의 서커스들이 공연되고 있고, 서커스 전용 공연장이 오픈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서커스’하면 태양의 서커스나 동춘 서커스를 떠올리는 경험의 폭이 넓지 않은 관객들은 ‘왠 서커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랑스와 캐나다를 중심으로 확산되어온 다양한 서커스와 아크로바틱 공연들은 이제 세계의 공연예술계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비보잉이나 클래식 장르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가미된 복합 장르의 작품들을 접하게 된 한국의 관객들도 이제는 넓은 의미의 ‘서커스’라는 장르를 수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은 앞선 두 나라에 비해 비교적 늦게 서커스에 눈을 뜬 편이지만,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도 점점 서커스 공연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확실한 듯 하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관람한 영국 단체의 서커스 공연은 ‘Bromance’와 ‘4x4 Ephemeral Architectures’ 그리고 ‘Ockham's razor’라는 작품이었다. ‘Bromance’는 예상 가능한대로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구성으로 한 공연이었다. 세 남자의 관계를 소재로 비보잉과 아크로바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작품이었는데, 규모가 큰 작품은 아니었지만, 유쾌하고 매끄러운 구성과 젊은 출연자들의 패기와 귀여움(?)이 느껴져서 그런지 젊은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꽤 많이 얻은 듯 했다. ‘4x4 Ephemeral Architectures’는 저글링과 발레를 결합한 공연인데, 4명의 저글러와 4명의 발레 무용수들이 퀸텟의 라이브 연주와 어우러져 펼쳐졌다. 공, 봉, 링 세 가지의 저글링이 발레 무용수들의 동작과 교차되거나 어울리며 구성되었다. 발레와 음악 그리고 저글링이 만들어내는 그림들이 제법 아름답게 표현되는 장면들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Okham’s razor’는 2개의 짧은 작품으로 구성되어 30분 정도 공연되었는데, 각각 뗏목 모양처럼 생긴 철봉과 박스를 응용하여 그리 고난이도 기술은 아니었지만 스토리와 음악, 기술이 깔끔하게 정리된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세 작품 모두 아이디어나 기술적인 면, 완성도에 있어서 놀랄만한 감동은 없었지만 비보잉, 클래식 등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공연들의 흐름을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Bromance © Karina Stevens
Bromance ©

Karina Stevens

4x4 Ephemeral Architectures © Beinn Muir
4x4 Ephemeral Architectures ©

Beinn Muir

Underbelly © 주한영국문화원
Underbelly ©

주한영국문화원

보랏빛 소를 보았다.

미국의 경영학자 세스 고딘(Seth Godin)이 10여년 전에 썼던 화제의 도서 <보랏빛 소가 온다>에는 ‘광고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상품/마케팅은 주목할 만한(remarkable) 가치가 있어야 한다’ 는 메시지의 상징으로 보랏빛 소가 등장한다. 내용은 이러하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다가 들판에서 풀을 뜯는 수백 마리의 소를 처음 보게 되면 시선을 빼앗기지만 이런 경관이 계속 이어진다면 금새 지루해지고, 그러다 그 들판에 보랏빛의 소가 나타난다면 눈길을 사로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 보랏빛 소를 연상시키는 소 한 마리가 에든버러에서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심지어 누워서 말이다.

언더벨리(Underbelly’라는 이름의 이 보랏빛 소는 몇 개의 공연팀들의 프로덕션을 하나의 레퍼토리로 구성하여 영국 전역을 이동하며 공연하는, 쉽게 말해 신개념 서커스 텐트다. ‘Underbelly’는 보랏빛 소가 누워있는 조지 스퀘어 가든(George Suare Garden) 외에도 ‘Cowgate’, ‘Meadows’ 등 소와 연관된 단어를 붙여 존(zone)을 형성한다. 에든버러에서는 언더벨리의 존(Zone) 아래에 상당한 숫자의 공연장들을 포함하여 서커스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엮어냈는데, 보랏빛 소와 서커스 허브(Circus Hub)가 세워진 Meadows의 텐트에서는 주로 서커스 공연들이 무대에 올랐다.  

페스티벌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탈일상의 기쁨일 것이다. 온 도시가 축제로 가득 찬 에든버러는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 보랏빛 소는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존재였다. 비교적 늦은 방문이긴 했지만, 에든버러에서 마주한 공연과 사람들 그리고 그곳의 바람과 공기가 줬던 신선함이 아직 유효한 걸 보면 왜 에든버러가 그토록 사랑받고 있는지 알 것 같다. 혹시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언젠가는 꼭 보랏빛 소를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필자: LG 아트센터 김지인

문화기획사와 극단을 거쳐 LG 아트센터의 기획팀에서 10년째 홍보와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연과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은 공연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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