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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마임축제,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국제교류업무를 담당한 바 있는 박지선 프로듀서가 ‘카라반 쇼케이스 참가 후기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그녀가 관람한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피치세션, 마켓플레이스 등에 대해 설명합니다.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공연을 소개하는 피치세션

5월 12일 둘째 날. 브라이튼의 날씨는 극에서 또 다른 극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 점점 더 조화를 보이고 있었다. 오전에 두 시간 동안은 피치세션이다. 이 세션은 공연을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예술가와 기관들이 작품을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소개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공연예술마켓에서 이러한 세션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프로듀서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하지만, 카라반에서는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과거 작품들과 현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래선가. 때로는, 이 피치세션이 자전적인 강연 퍼포먼스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오전 세션 동안 총 7명이 발표했다.  

액션 히어로의 ‘슬랩 토크’와 브라이언 로벨의 ‘퍼지’

둘째 날도 공연, 저녁식사, 네트워킹 파티 등으로 하루가 꽉 차 있었다. 둘째 날은 특히 액션 히어로(Action Hero) 의 <슬랩 토크(Slap Talk)>과 브라이언 로벨(Brian Lobel)의 <퍼지(PURGE)>가 관심을 끌었다. <슬랩 토크>는 5시간 동안 공연한다. 관객들은 5시간 동안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중간에 나갔다 들어올 수 있으며, 5시간 중 언제 들어와도 공연 관람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두 배우는 카메라와 마주보고 대화한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욕이라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그들의 표정은 관객들 앞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창의적인 욕설, 모욕적인 언어들로 가득 차 있는 대화. 그들은 마치 카메라를 두고 결투하는 것 같다. 아무 해프닝도 없고 움직임도 최소화된 이 작품은 언어만으로도 잔인성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인 <퍼지>는 페이스북 친구들에 대한 강연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친구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고, 오래된 친구들조차도 물리적인 만남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 시대의 친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브라이언 로벨은 공연이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본인의 페이스북 친구들을 대상으로 관객들과 함께 친구를 유지할 것인가? 친구를 끊을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는 미리 페이스북 친구들에 본인이 할 공연을 메일로 알리고, 그 메일에 대한 친구들의 답을 관객들과 공유한다. 관객들은 적극 동참하며, 친구와 관계를 지속할 지 여부와 그 이유에 대해 함께 논의한다. 공연 후 브라이언 로벨은 페이스북 친구들의 반이나 잃었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얻었을 수도 있겠다. 이러한 형태의 공연은 무엇보다 현장성이 살아있어 관객들은 보다 흥미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 공연은 반복될 수 있는가? 어떻게 반복할 수 있는가? 제한적인 반복 또는 매번 새로운 공연이 되지 않을지? 이 작품은 그가 소재 삼은 페이스북 친구들의 흘러가버리는 담벼락과 닮은 것 같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의 답변에 우리는 모두 친구 관계 지속 여부에 대해서 'YES'를 외쳤다. ‘브라이언, 친구는 페이스북 친구 관계 끊기 버튼 누른다고 끊어지는 게 아니야’  

예술가와 관객이 일대일로 만나는 공연, ‘폭로’

5월 13일은 카라반 마지막 날이다. 날씨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오늘은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가 준비되어 있다. 가장 일반적인 공연예술마켓 성격에 가까운 프로그램으로, 카라반 역시 영국 예술가와 단체들이 해외 공연예술 관계자와 교류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켓플레이스가 열리기 전 사전 예약 해 놓은 <폭로(Exposure)>를 보러 브라이튼 돔으로 이동했다. 이 작품은 관객과 예술가 일대일 공연이어서 사전에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하였다. 안내원을 따라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을 내려가면 어둠 속에 앉아 손전등을 비춰주는 신비로운 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이 여인은 관객에게 앉으라고 한 후, 이어폰을 건네준다. 색소 결핍증을 가지고 태어난 이 예술가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정체성, 타인의 시선,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술가 개인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공연은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카라반의 마켓플레이스와 또다른 공연들

공연 후 마켓플레이스로 향했다. 마켓플레이스는 일반 공연예술마켓에서 볼 수 있는 부스의 형태가 아니라, 테이블에 30여 단체가 공연 자료들을 놓고 카라반 참가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참가한 단체 대부분은 전통적인 형식 대신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기획 중이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보다 편안하게 예술가, 공연예술단체, 카라반 참가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마켓플레이스에 이어서 <Gods are fallen and All Safety Gone>라는 제목의 공연을 보았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딸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한쪽에 쌓여있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같은 시공간이 반복된다. 엄마의 시간은 늘 고정되어 있고, 딸 시간은 축적되어 가니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공연은 둘이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도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가 잘 짜여지기도 했고, 배우들이 서로 대사를 주고받아서 그런지 3일 간 본 작품 중 가장 연극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관습적이거나 전통적이지는 않다. 

오후에는 브라이트 페스티벌 프로그램으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을 함께 관람하는 인스톨레이션 가이디드 트레일(Installation Guided Trail)에 참가 했다. 3일 내내 호텔과 카라반이 열리는 브라이튼 돔 주변만을 오고 갔던 참가자들에게 전시 작품뿐만 아니라 브라이튼 도시 속의 작은 예술 공간들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후에 모두를 기분 좋게 해 준 작품은 <노래하는 최면술사(The Singing Hypnotist)>다. 마법사나 쓸 것 같은 긴 모자에 망토, 바지를 휘날리면서 등장한 배우는 매력적이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음색을 뽐낸다. 노래를 통해서 관객이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하는 것이다. 배우는 관객을 앞으로 불러서 최면을 걸기도 하고, 관객 전체에게 최면 거는 법을 전하기도 한다. 최면 전문가가 노래를 하면서 공연을 하는 것인지, 배우가 최면술사 역을 맡은 것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관객 모두 이 공연에 빠져들어 즐거워하였기 때문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식과 언어를 찾는 카라반 공연들

카라반 쇼케이스에서 소개하는, 추구하는 작품들은 무엇일까? 새로운 작품(New Work)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떤 이들에겐 페이스북 상의 친구를 관객들과 함께 구성하는 공연, 톱을 이용하여 의자를 자르는 공연, 본인을 최면술사라고 하며 관객들과 노는 공연을 보면서 연극의 진정성이 없다, 장난이다, 너무 표면적인 것이 아니냐? 등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전혀 심각하지 않고, 다소 장난스럽거나 가볍게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2014년의 우리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SNS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140자 이내의 소통에 적응한 나머지, 300페이지 남짓한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버거워져 간다. 

카라반에서 본 공연들 모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시대가 변하면, 삶의 방식 또한 변하듯이, 이 시대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연극적 언어를 찾는 것이다. 카라반은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이것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것 같다. 

떠나는 날, 브라이튼의 날씨는 눈부시게 좋았다.   

 

박지선

춘천마임축제에서 해외프로그래밍과 기획실장을 담당한 바 있는 박지선은 아시아나우프로덕션에서 한국 연극단체들과 해외 방방곡곡의 축제와 극장을 찾아다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부 전략기획팀장을 맡았다. 지금은 현장에서 독립 프로듀서들과  '프로듀서그룹 도트' 를 만들어 창의적이고, 신나고 재미있는 생각과 일들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