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문화원 투어 전시로, 지난 10월 6일 현대카드 전시공간 Storage에서 개막한 ‘David Shrigley: Lose Your Mind’의 작가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는 다양한 시각 예술 영역에서 일상과 인간 관계에 관한 풍자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선보이는 작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칠레와 멕시코에서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 속에 개막한 ‘Lose Your Mind’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카트리나 슈워츠(Katrina Schwarz)와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2015년 8월 17일, 런던과 데본에서 진행된 두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Lose Your Mind’ 전시물 중 'Ostrich'의 의미는?
카트리나 슈워츠(이하 KS): 이번 전시에서는 박제품인 ‘Ostrich(2009)’가 꽤 돋보입니다. 겁이 나면 머리를 땅에 처박는 타조에서 머리를 없앤 모양을 한 이 조각 작품이 이제 투어 전시 컬렉션에 들어간 덕에 아주 먼 곳으로 널리 돌아다니게 된 셈이군요! 이 작품에 꽤 합당하게 어울리는 부조리한 운명인 걸까요?
데이비드 슈리글리(이하 DS): ‘Ostrich(2009)’는 동물에서 머리를 제거해서 만든, 혹은 애초에 머리가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로 만든 연작의 일부입니다. 머리가 없는 고양이, 머리가 없는 원숭이, 머리가 없는 타조를 만들었고, 앞으로는 아마 머리가 없는 강아지 모양을 한 조각도 만들 것 같습니다. 제가 개를 기르고 있어서 박제 작업이 잠깐 중단되었습니다. 다 예상하실 명백한 이유 때문이지요.
일반적으로 타조는 겁이 나면 땅에 머리를 박아넣는데, 이는 ‘Ostrich(2009)’의 타조가 머리가 없는 것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하지만 너무 뻔한 말장난 같은 건 피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머리가 없고, 두뇌가 없는 동물에 관한 겁니다.
제가 만드는 여타 작품들처럼 ‘Ostrich(2009)’의 의미는 처음부터 모호합니다. 하지만 작업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다른 맥락에서 보게 되고 작품의 의미가 변하고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제게는 그 점이 바로 작업을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보여줄 때 좋은 점입니다. 타조는 원래 영국에 살고 있던 새가 아니고, 그래서 이 작품이 영국문화원 컬렉션에 자리 잡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작품이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회자되고 의미가 넓게 뻗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KS: 작품을 보고 두 가지 대조적 인상을 받아 놀랐습니다. 첫 번째는 박제를 활용한 작업들이 데이비드 슈리글리 작가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기존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활용해서 만든 다른 조각 작업들과 연결점을 만든 것 같아요. 박제 작업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는 작업들인가요?
DS: 박제를 만드는 과정은 실물과 비슷한 조각을 만들고 여기에 동물의 가죽을 씌우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동물의 형상은 박제사가 만드는 것이고요.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과정이며 비용도 많이 듭니다. 이 두 가지 단계는 제가 지금까지 많이 해보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2차원적인 창작물들(종이에 드로잉을 하는 작업)을 만들다보면 어떤 때는 자연스럽게 진도가 나가서 그 자체로 완성품이 되기도 하고 더 많은 경우 미완성물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합니다. 그런데 박제를 활용한 “개념적” 작업에서는 작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디어 구상을 끝내두어야만 합니다. 수정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이 박제 작업들이 중요한 겁니다.
작업 자체가 3차원적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조각 작품들은 여타 드로잉이 가지는 아이디어와 서사와 대조를 이룹니다. ‘Ostrich(2009)’와 같은 작업의 장점은 작품이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드로잉이 가질 수 없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Ostrich(2009)’는 한때 실제로 살아 숨쉬는 타조였기 때문에 존재감을 갖고 있습니다.
박제에 대한 기억과 작가에게 "재료"로서 박제가 갖는 매력은?
KS: 박제는 죽어있는 것을 생물처럼 만드는 행위라 처음부터 그 성격이 모호합니다.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도 다양합니다. 작품에 빠져들어서 손을 뻗어 만져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소름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제된 동물을 처음 보셨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DS: 영국 중부지방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그 지역 박물관에서 처음 봤던 것 같아요. 1970년대에 레스터 박물관에 처음 갔었고, 좀슬어 있는 맹수들의 박제를 몇 개 본 듯 합니다. 제 기억 속의 박제는 “한때 살아 있었지만 지금은 죽어 있고 이상할 정도로 실물과 달라보이는 물건”이었어요. 박제품을 전시할 때는 눈속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는 우리 또한 살아있는 동물이라 다른 동물들이 살아있지 않을 때 이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박제품을 접하면 얕은 눈속임에 넘어가기보다 인간들은 꽤 본능적인 반응을 하게 되지요.
박제된 동물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플랫메이트였던 적도 있어요. 예전에 살았던 집에 박제된 다람쥐가 있었던 것도 기억하고요. 그 다람쥐는 칫솔을 쥐고 있었고, 낡고 좀이 슨데다 이빨이 툭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어디서 온 건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작은 악어 박제도 있었는데 지금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강아지를 들였을 때 치워버렸는데, 강아지가 해로운 방식으로 박제된 악어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악어 박제 역시 좀이 슬었고요. 강아지는 이 악어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지요.
KS: “취미”로서 박제의 유행이 시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 동시대 미술가들은 박제 동물을 아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들에게 “재료”로서 박제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DS: 저는 박제품이 갖는 삐딱함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살아있던 것의 잔여물을 다루는 것에서 오는 어색함 같은 것 말이죠. 우리는 인간의 시체는 치워버리거나 정말로 보기 싫어합니다만, 동물의 경우에는 가죽을 벗겨서 막연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고 집이든 어디든 꾸밀 수 있는 신기한 장식품으로 쓰면서 아주 기뻐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죽음과 시체를 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셈이고, 그렇기 때문에 좀 웃긴 데가 있기도 하고, 좀 부적절하기도 합니다. 박제를 통해서 동물의 사체를 보관하는 것이요.
예를 들어,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기르는 애완동물이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강아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 제가 얼마나 이 강아지를 좋아하는지 아시겠지요 – 심적으로 매우 힘들 것이고 또 제가 이 강아지의 사체를 박제로 만들고 싶어할 것 같진 않아요. 그렇게 하는 건 이상하고 부적절하죠. 한편 오히려 흥미롭고 또 생각해볼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박제품에 관심을 두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어떤 동물을 “재현”하고 싶다면 박제야말로 궁극적인 수단이지요.
작품 속에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KS: 드로잉 작업에서도 동물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곤 합니다. 요컨대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들을 잡아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도전적으로 말합니다. 큰 사슴처럼 생겼고 거대한 가지뿔이 달린 동물이 ‘난 대단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드로잉 작업에서 동물들을 자주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DS: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작업은 모든 것을 다룹니다. 그러니 어느 한 시점에는 모든 것을 생각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드로잉을 만드는 것,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라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드로잉을 그릴 새로운 뭔가가 있어야 하고 또 고려해야 할 다른 관계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모든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살아 있는 모든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작업에서 다루게 되는 겁니다. 동물의 모든 종을 말이지요. 아시다시피 제 드로잉 작품들 중에는 개가 아주 많이 등장하는데요, 왜냐면 드로잉 작업을 할 때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를 쳐다보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제 드로잉 작업은 양이 꽤 많기 때문에 모든 종이 한번 쯤은 등장해야만 합니다. 의인화 그 자체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흔한 물건에서부터 역동적이고 흔치 않은 것들까지 모두 작업의 일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로서의 동물이 등장하고 의인화되는 것은 작업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KS: 즐겨 그리는 동물이 특별히 따로 있나요? 특별히 그리기 어려운 동물이 따로 있는지요?
DS: 매우 현실적인 이유들이 작용하는데요. 제가 잘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작품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사실 개를 그리는 게 꽤 어렵습니다. 제 강아지를 그리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데, 절대 드로잉을 할 만큼 오래 앉아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꽤 많이 그렸어요. 막 그리기도 쉽고, 그렇게 해도 코끼리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 개는 대충이라도 그리기는 어렵고, 그려놓고도 개라는 것을 알아보기도 힘들어요. 그냥 포유류 동물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요. 개가 아니라 고양이라거나 아니면 말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