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nburgh Showcase 2015 공연 중의 하나인 'Fake it 'til you Make it' by Bryony Kimmings Ltd
세계 최대의 공연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마지막 주에 열리는 영국문화원 쇼케이스는 영국문화원의 초청을 받은 전 세계 200여명의 주요 극장 및 축제 관계자들이 일주일 동안 영국 공연예술계의 최신 공연들을 함께 관람하고, 네트워킹 행사를 통해 서로의 관심 분야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홀수 연도마다 개최되며, 2015년으로 10회째를 맞이하였습니다.
예술의 전당 김영랑 프로듀서가 참가 후기 1편에서 영국문화원 쇼케이스의 성격을 소개한데 이어, 2편에서는 쇼케이스에서 관람한 공연들의 리뷰와 함께 앞으로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방문할 예술 애호가분들을 위한 공연 관람 노하우와 에든버러만이 가진 매력을 들려드립니다.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극장을 찾아라!
축제 기간 중 에든버러 시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두터운 2015년 프린지 안내 책자는 450여 쪽이 넘는 페이지에 3천여 개 이상의 공연을 소개하고 있었다(실제로 2015년 페스티벌 기간동안 3,314개의 작품이 5만여 회 이상 공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공연을 앞에 두면 공연 예술 종사자라도 누군가의 추천이 없다면 공연을 선택하기가 망설여진다. 관람할 공연을 선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의 페스티벌 후기들을 찾아보며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안에서 평가가 좋았던 공연들의 극장명을 알아보거나 거꾸로 극장 위주로 체크해보는 것도 공연을 선택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방문 기간동안 20여 편이 조금 넘는 공연들을 관람했는데, 에든버러도 초행이고 프린지 페스티벌도 처음이라 공연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극장들을 찾아다니며 며칠을 보내고 나니 의도치 않게 몇몇 공연장들을 여러 차례 방문했음을 깨달았다. 이는 극장별로 장르적 개성을 담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인데 무용이나 신체극(서커스 포함) 혹은 실험적인 공연을 주로 찾아다닌 나와 비슷한 취향이라면 프레전스(Pleasance Courtyard), 써머홀(Summerhall), 댄스베이스(Dance Base), 언더밸리(Underbelly) 극장의 공연을 눈여겨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 외에도 이번 방문에서는 한 편밖에 보지 못했으나 영국문화원 관계자 분이 추천했던 트레버스(Traverse Theater)에선 주목받는 창작극들이 많이 공연된다고 하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에든버러 쇼케이스 기간 중 관람한 공연들은 모두 신나거나, 짜릿하거나, 황당하거나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하나 하나 기억에 남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들을 꼽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소재를 자연스러우면서도 흡입력 있게 풀어간 <Fake it ’til you make it>와 <So it goes> 등이 있었다(페이지 상단에 삽입된 동영상을 통해 Fake it ‘til you make it의 창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이러한 공연들의 약진은 이번 프린지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생경한 관극 경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으로는 <Fiction>과 <HUG>가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칠흙 같은 암흑속에서 진행 되는 공연이었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뜬 게 아닐 정도로 어두운 공간에서 시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공연이었다. 간단한 영상만이 제시된 후 암전속에서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한 여성의 음성으로 시작하는 <Fiction>은 각종 음향 효과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뭔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쇼케이스 참가자들에게 고르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HUG>의 경우도 (제목이 암시해주듯) 공연자가 관객을 일대일로 안고 진행되는 독특한 공연이었다. 사람의 소리가 가진 다양한 음색과 진동 그리고 체온을 극대화하고 포옹이라는 행위가 더해지면서 일종의 안식의 느낌을 줌으로써 색다른 관극 경험을 선사했다.
8월의 에든버러가 가진 매력
미리 말해두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의 특성상 무대와 소품, 의상이 완벽하게 준비된 공연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간다면 공연을 보는 도중 실망할 확률이 높다. 손으로 종이에 그린 소품들이 무대 위에서 속출하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다음 공연을 위해 바로 공연 철수가 시작되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다양한 층위의 공연 예술 실험이 이뤄지는 곳이다(하루에 얼마나 많은 공연을 한 극장에서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도 이뤄지는 둣 했다. 밤 11시에 시작하는 공연도 있다!)
무대와 객석수가 큰 대극장을 보유하고 있고, 검증된 공연들이 주로 올려지는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하다 보니 프린지의 몇몇 공연들은 때로는 어설프고 해괴망측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여러 공연들을 보면 볼수록 창작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밀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심지어 내 기호에 맞지 않는 작품일지라도 그것을 무대화한 창작자들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소박하지만 열정넘치는 무대를 직접 봄으로써, 에든버러에 모인 전 세계 공연예술인들의 과감한 시도와 열정적인 에너지가 모여 동시대의 공연예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기 때문이다.
굳이 공연예술 전문가나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시도하는 용기와 도전 정신이 가득하고 웃음과 감동, 연민, 심지어는 공허함까지 범람하는 에든버러의 공연 현장은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든 다양한 형태와 매력을 발산하는 활력소, 혹은 위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영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에든버러는 꼭 다녀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굳이 공연이 아니더라도 풍광 좋고, 물 좋고(런던보다 확실히 좋다!) 훈훈하고 스위트한 사람들(스코틀랜드 분들은 정말 친절했다.)이 많은 에든버러는 100% 힐링의 시간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영랑
20세기에 예술의전당에 입사하여 2015년 현재까지 다양한 파트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예술의전당 공연부에서 오페라, 무용 분야의 공연 기획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