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beth ©

Nicholas Rawling

201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영국문화원 주관 에든버러 쇼케이스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모습들이 살아 숨 쉬는 페스티벌의 현장을 두산아트센터 김요안 프로듀서의 이야기로 만나보세요.

약진과 마스터피스

이번 에든버러 쇼케이스에는 신진 극단의 참여가 많았던 만큼 새로운 형식과 실험을 담은 최근작들이 많이 보여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주목받은 Imitating the Dog<Nocturnes>은 아름다운 영상 이미지와 라이브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의 인식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Nocturnes>은 냉전이 최고조인 시점에서 베를린에 위치한 남녀 스파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실재란 무엇이며, 우리의 행위란 탈진실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실재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내용과 형식 양쪽에서 질문하며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공연은 하나의 무대에서 위쪽의 스크린으로는 무음의 흑백 영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동일한 장면에 따르는 오디오를 배우 세 명의 라이브 공연으로 병행하여 보여주었다. 위쪽의 영상과 아래의 오디오 실연은 때로는 일치하지만, 때로는 시간/맥락/공간 등에서 불일치하며 ‘실재’와 ‘픽션’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실제로 작품 소개글에서 이 작품을 진실과 자유의지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함축해 설명하기도 했다.

또 다른 주목받는 극단인 Paper Cinema는 연극, 펜 잉크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라이브 연주, 필름 작업이 혼합된 작업을 선보였다. 마치 종이 인형극을 벌이듯 퍼포머들은 펜 잉크로 그려진 그래픽 노블의 장면을 배경과 인물로 나누어 라이브로 스크린에 영상으로 재현하고, 음악 연주자들은 여기에 라이브로 음향 효과와 음악을 입히면서 실연되는 공연이었다. 이들은 고전극인 셰익스피어의 <Macbeth>를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풍광 속에 전쟁, 배신의 플롯을 가볍고도 묵직하게 표현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Real Magic ©

Hugo Glendinning / The Flying Lovers of Vitebsk ©Steve Tanner / Whip Hand ©Mihaela Bodlovic

신진 극단이 새로운 공연의 형식적 가능성으로 기존의 무대 위 고정관념을 흔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기성 극단은 높고 원숙한 극단의 메쏘드를 기반으로 때로는 미니멀하고 과감하게 때로는 아주 우아하게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선보였다. 영국 셰필드를 베이스로 30년 이상 선도적이고 과감한 연극을 선보여 왔던 Forced Entertainment, 특히 한국에도 아시아 예술극장의 개관 프로그램으로 두 개의 작품을 선보였던 이 극단은 이번에는 <Real Magic>이라는 신작으로,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 선보였다. 이 공연은 게임, 코미디 쇼 등의 형식을 차용하여 현실 세계의 욕망과 대비되는 변화의 취약성, 반복된 관습과 절망의 메커니즘을 성인들을 위한 우화로 재탄생시켰다. 

Forced Entertainment의 작품 중 아마도 가장 미니멀하고 대담한 작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Real Magic>은 현지에서 찬반과 선호가 극도로 엇갈리는 작품이기도 했다. 관객의 성원 속에 조기 매진된 공연이었음에도 공연장을 찾은 관객 중 20여 명은 결국 이 공연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공연 중에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기도 했다.

반면 Kneehigh의 신작인 <The Flying Lovers of Vitebsk>는 관객의 감성과 극단의 장점이 정교하게 만나는 작품이었다. 2016년 LG아트센터 공연으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기도 한 Kneehigh는 자유분방한 공동 작업 방식 속에 관객을 매료시키는 감성과 소재의 작품을 제작해 선보여 왔는데, 이번 작품은 젊은 마크 샤갈과 그의 부인 벨라의 삶과 불멸의 사랑에 대해 다루었는데, 샤갈의 유명한 동명 명화와 현실에서의 그들 부부의 삶을 대비시키며 높은 완성도로 직조해나갔다. 샤갈의 동명 명화의 시각적인 스타일과 톤은 작품에 깊이 녹아 있고, 러시안 유태교의 전통 등은 작품에 흥겨운 리듬감과 정서로 들어와 있었다. 이는 현지에서 많은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와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도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뉴라이팅의 주요한 터전인 트래버스 극장에서는 Douglas Maxwell<Whip Hand> 같은 전통적인 뉴라이팅 계열의 높은 완성도의 극작 기반의 연극을 선보였다. 동시에 VR 기술 등이 결합한 <Frogman> 등의 신작도 함께 선보이며 영국 뉴라이팅 극장의 전통과 새로운 연극에 대한 전망을 함께 제시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책상 위의 말들

사회의 약화와 공동체의 위기는 예술에게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에든버러 여행에서 만난 공연들은 우울하고 불안한 현 세계를 위한 사회의 가장 뒤 편 혹은 가장 바깥쪽 경계에서 들리는 강하고 깊은 울림의 감정의 말들이었고, 새로운 형식과 과감한 메시지였다. 이번 극장 안으로의 여행은 우울한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또 다른 공연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그 여행에서 만난 공연들은 아직 내 책상 위 한 쪽에 정리되지 못한 채 높이 쌓여있다. 하지만, 나는 바라고 믿는다. 이제 다시 현실 속으로의 여행, 새로 만들게 될 공연으로의 여행은 정리되지 않은 내 책상 위에서부터 시작될 것임을...

김요안 프로듀서

오리콤, 악어컴퍼니, 동숭아트센터에서 일했으며, 두산아트센터에서는 2007년 개관부터 프로듀서로서 일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 지원과 신작 개발, 국제교류에 관심이 많다.